1. 고려시대 백자의 등장
한국에서 백자의 제작은 이미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백자는 청자가 제작되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유사하게 등장하였으며 시흥 방산동, 용인 서리, 여주 중암리 등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중국과는 다르게 백자와 청자가 같은 가마에서 제작되어 백자가 잘 구워지지 않아 공기구멍이 많고 박락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이유는 청자보다 용융점이 높은 백자의 특성때문에 기인한 것이며 고려백자를 '연질백자'로 지칭하는 것은 이런 번조방식 때문이었습니다.
12~13세기 정교한 품질의 청자를 생산해 나갈 때 백자 역시 청자와 비슷한 기종, 문양으로 정교한 백자를 생산하기도 하였으나 번조 과정에서 덜 익는 치명적인 단점을 보완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중 국립중앙박물관 <백자상감모란문매병>이 재미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주목됩니다. 백토로 매병의 몸체를 만들고 중앙부에 청자토를 감입하여 만들었는데 백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후기에도 백자의 품질은 크게 개선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932년 금강산 방화선 공사시 출토된 백자에서 이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고려의 핵심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이성계 발원 사리갖춤에 백자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백자의 경도가 약하고 잡물이 많기 때문입니다.

2. 이성계 발원 사리갖춤의 백자와 명문
이성계 발원 사리갖춤은 1932년 10월 6일 금강산 월출봉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아쉽게도 발굴보고서는 남아있지 않지만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가운데 방화선 개착 공사 도중 '고태선'이라는 인부에 의해 발견되었음을 적고 있습니다. 백자는 연질백자보다는 단단한 경도이나 경질백자보다는 무르며 품질이 좋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백자가 사리갖춤에 총 5점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중 발 두 점에는 명문이 시문되어 있습니다. 백자에는 발원자와 발원 내용, 제작 시기, 사리갖춤 봉안 장소 등 불사에 관한 종합적인 정보들을 담고 있습니다.


<명문 번역 1>
대명 홍무 24년 신미년 4월 어느 날 발원합니다. 동원 사념(?)이 이 합을 만듭니다. 석가여래께서 입적하시고 2천여 년이 지난 대명 홍무 연간에 야납(은거하는 수행자) 월암이 송헌시중 등 만인과 함 께 발원하여 금강산에 묻습니다. 미륵의 세상을 기다려 머지않은 삼회 때 다시 열어서 우러러 예불하겠습니다. 이 서원의 견고함은 불조께서 증명하실 것입니다
백자 외면에 새겨진 송헌시중은 이성계를 일컫는 것으로 '송헌'은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이전의 호입니다.
<명문 번역 2>
금강산 비로봉 사리안유기 석가여래께서 입멸하신 지 이천사백여 년이 지난 대명 홍무 24년 신미년 오월 어느 날에 월암은 이에 시중 이성계 등 만인과 함께 발원하여 금강산에 묻어 바치니, 미륵보살께서 내세에 나타나 사람 들에게 받들어 보여주시어 진실한 법화를 여는 것을 도우셔서 불 도를 이룩하시길 기원합니다. 이 서원의 견고함은 불조께서 증명하 실 것입니다. 신미년 오월 어느 날에 기록합니다. 수행자 월암이 함께 발원합니다. 시주 문하시중 이성계가 함께 기원합니다. 삼한 국대부인 강씨가 함께 기원합니다. 낙랑군부인 김씨 묘선이 함께 기원합니다. 강양군부인 이씨 묘정이 함께 기원합니다. 기타 많은 사람이 기원합니다. 미륵삼회를 기다려 다시 열어 예배하고 함께 깨달음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굽 부분> 신미년 사월 어느 날 방산 사기장 심룡과 비구 신관이 함께 기원 합니다.
특히 굽부분에 새겨진 내용에서 방산 사기장 심룡이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는 이성계가 발원한 사리기 제작지가 양구지역에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참고문헌
강경숙, 「高麗白磁의 硏究」, 『미술사학연구』171-172, 한국미술사학회, 1986
김효진, 「용인 서리 상반요지 출토 고려백자 제기의 특징과 제작시기」, 『미술사학연구』282, 한국미술사학회, 2014.
이지원,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연구」,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22.
주경미, 「李成桂 發願 佛舍利莊嚴具의 硏究」, 『미술사학연구』257, 한국미술사학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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