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불교는 제외하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에 국민들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종교였습니다. 불교가 처음 수용된 이래 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유산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중 오늘 소개드릴 부석사 괘불이 있었던 부석사는 의상과 인연이 깊은 사찰입니다. 의상이 유학길을 떠나 신라로 돌아와 사찰을 창건하게 되는데 의상을 항상 따라다니던 선묘룡이 허공에서 큰 바위로 변신하였다는 이야기가 『송고승전』에 전하고 있습니다. 이 큰 바위가 공중을 맴돌다 현 위치에 멈추어 의상과 선묘의 이야기와 함께 부석사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오랜 역사와 명성에 비해 조선시대까지 부석사에 대한 자세히 알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입니다. 또한 오늘날 전하는 괘불에 대한 정보도 한정적입니다. 부석사와 부석사 괘불에서 등장하는 내용을 토대로 부석사 괘불에 대해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부석사 괘불
오늘 소개드릴 괘불은 사찰의 전각 내부에 봉안하는 불화가 아닌 전각 외부에서 걸리는 대형불화입니다. 의식의 규모가 큰 외부 행사에서 사용하기 위한 것은 4M~10M에 이르기까지 그 크기는 매우 다양하며, 현재 17~20세기까지 약 100여점의 괘불이 조사되었습니다. 이중 부석사 괘불은 가장 복잡한 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석사 괘불을 그리기로 기획할 17세기 영산회상도가 불화의 핵심 주제였습니다. 영산회상도는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과 설법회에 참석하는 군중의 모습을 도해한 그림입니다. 이 주제는 17세기에 조성된 다른 괘불에서도 보입니다. 그런데 부석사 괘불에서는 특이하게 영산회상도 위쪽으로 다시 세 부처의 설법 장면이 추가되어있습니다. 각 부처를 따라 설법을 듣는 보살과 천인, 팔부중, 역사, 신들의 무리를 합하면 약 7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부석사 괘불의 구성
70여 명의 인물이 그려진 복잡한 부석사 괘불을 살펴보면 화면에 네 부처의 설법회를 기본 구성으로 상단과 하단이 크게 나누어져있습니다. 이러한 도상은 조선시대 성행한 삼신불회도와 삼세불회도에 근거하여 만들어졌습니다. 하단의 영산회상도는 사바세계의 부처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하여 상단의 부처와 석가모니가 연결되는 구조입니다. 중앙에는 비로자나불이 우측에는 동방 유리광세계의 약사불, 좌측에는 서방 극락세계의 아비타불과 함께 도해되면서 삼세불회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세 부처 이상 괘불에 그려진 도상이 다른 괘불에서도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의식용 괘불이 등장한 것은 의식집에 단서가 있습니다.

고대 인도의 영취산에서 있었던 석가모니불의 설법회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이 펼쳐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연화대좌에 앉은 석가모니불은 선정에 잠겼던 오른손을 내려 땅을 가리킵니다. 이 수인은 그가 마군의 유혹을 물리치고 깨달음을 이룬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설법공간에는 청중들이 공손한 자세로 부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연꽃을 들거나 합장한 보살과 천인, 부처를 따르는 제자와 이미 신통력을 얻은 나한, 사천왕 등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의식집은 경전보다 교리적으로는 덜 엄격하면서 신도들의 현실적인 요구와 신앙의 변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러 부처를 청하는 전통은 태조에 의해 만들어져 조선 전기 왕실에서 행해진 『삼불예참문』에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삼불예참문』은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불을 찬탄하는 예참 의식문이나 실제 의식문에는 두 부처에 대한 찬문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삼신불에 이어서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더해짐에 따라 다섯 부처에 대한 예불문이 완성된 것입니다. 즉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의 오불이 갖춰진 것입니다.
이 오불은 공간적으로는 동서남북의 사방과 온 우주로 확장되어 모든 시공간에 편재하는 부처와 불법을 대표합니다. 이처럼 부석사 괘불은 여러 부처를 의식에 청하는 전통을 계승하여 대중의 신앙 요구에 따라 의식의 효용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존상이 의식 절차에 반영되도록 한 것입니다. 부석사 괘불은 조선시대의 여러 신앙과 교리가 의식을 통해 통한된 결과 만들어진 복합적인 구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줍니다.


영산회산도 위에는 다시 세 부처의 설법회가 있습니다. 영산회상도는 조선 사람들이 알고 있던 최고의 설법회였지만 부석사 괘불에는 상단에 세 부처의 설법회를 추가해 또 다른 부처의 세계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가운데에 위치한 비로자나불은 부처가 깨달은 우주의 진리, 불법을 뜻합니다. 그의 깨달음의 경지에서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는 경계가 없어지고 중생 모두는 하나로 포용됩니다.
괘불의 수리
1684년 조성된 괘불이 60여 년의 세월을 견뎌내면서 낡고 퇴색되었습니다. 부석사의 괘불을 그린 화승과 승려들은 이미 세상을 뜨거나 연로해 진 시간이었습니다. 이에 새로운 괘불을 제작하기로 하는데 낡은 1684년의 불화를 보수하는 임무도 함께 맡게 됩니다. 손상된 곳은 다시 잇고 안료가 떨어져 박락된 부분, 희미해진 필선은 붓질을 더해 다시 보수하였습니다. 이들은 이 전 세대의 양식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조심스레 다루었습니다. 중수 기록은 시주에 참여한 인원, 제작에 참여한 인원, 사찰의 중요 임무를 맡은 승려들과 당시 부석사의 승려 명단 순으로 기재되었습니다.
부석사에서 신륵사로
보수를 마친 1684년 부석사 괘불은 충청도 청풍에 있는 신륵사로 보내졌습니다. 화기 말미에 1745년 중수하여 신륵사로 이안하였고, 화승에 대한 이야기가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 어떤 이유로 부석사에서 신륵사로 괘불이 옮겨지게 되었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이 화승들과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추정만 가능할 뿐입니다.
참고 문헌
이은희, 「부석사 괘불(掛佛)의 화풍과 화승」 , 『강좌미술사』26,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06.
김선희, 「浮石寺 三身三世佛掛佛圖 硏究」, 『강좌미술사』39,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12.
『부석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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