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충 - 작은 것과 일상의 아름다움
현대인의 반복되는 삶. 그 하루 안에서 한 사람은 수많은 생물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다만, 바쁜 삶에 마주하고 기억하지 못하지만 평범한 삶에서 수많은 작은 생물들부터 다양한 환경들이 오늘의 삶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은 템포를 조금 늦추면서 조선시대의 초충(草蟲)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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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승, <호접도>, 102x26.5cm, 용인시박물관, 구입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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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우, <군접도>, 125x27cm,
국립중앙박물관, 본관 4407 |
조선시대 현전하는 그림에는 가장 작은 벌레를 세심하게 관찰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소재는 아름다운 ‘나비’를 꼽을 수 있습니다. 19세기 살아있는 나비를 그린 남계우 외에도 ‘정나비’로 불린 석하 정진철, 이당 이경승 등 근대화단에서 사생을 통한 사실적인 묘사가 이어졌습니다. 각폭에 수놓아진 나비들과 함께 인용된 나비와 관련된 시들은 그림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높입니다.
나비와 함께 고양이도 다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 <황묘농접도>, 국립중앙박물관 남계우 <화조화첩>이 그 예입니다. 대개 나비와 함께하는 고양이는 중국어 동음(同音)을 이용한 축수 그림으로 ‘묘(猫)’와 ‘모(耄)’가 발음이 유사하여 장수를 축원하는 의미로 활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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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우, <호접도 중 일부>, 126.9x30.3cm,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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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비’ 외에는 다른 소재는 없었던 것일까?
여름을 알리는 ‘매미’도 조선시대 자주 활용된 초충도의 소재입니다. 명대 문인화가들도 자주 찾았던 매미는 이슬만 먹고 맑은 곤충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때문에 문인들은 매미의 울음소리를 통해 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내용, 문학의 암송 등의 주제와 함께 다루기도 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관 2382) 심사정의 <화훼초충도>의 예처럼 단독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책거리 10폭 병풍》,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관 7953) <남일호화조화첩>의 예처럼 다양한 생물, 사물과 함께 표현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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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정, <화훼초충도>, 163x43cm, 국립중앙박물관, 본관 2382 (사진출처 : 이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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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주의 <초충영모어해산수첩>에 꿀벌, 매미, 귀뚜라미, 메뚜기 등 다양한 곤충들이 묘사되어 있어 삶에서 놓쳤던 장면을 다시 상기시키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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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주, <초충영모어해산수첩 중 9면>,
30.9x27.0cm, 국립진주박물관, 진주 1106 (사진출처 : 국립춘천박물관, 미물지생-옛 풀벌레 그림 속 세상, 2022, p.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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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이 작은 생명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더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사마귀, 여치 등 땅에 있는 벌레들입니다. 우리가 평소 초충도를 감상할 때에도 꽃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날고 있는 나비, 벌, 잠자리에 집중하지만 그 밑에도 작고 소중한 생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임당의 그림으로 전해지는 초충도에서 대표적인 예시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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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 신사임당, <초충도>, 34.2x29.3cm, 국립중앙박물관, 신수 3550 (사진출처 : 이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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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동적이고 긴장감을 찾는다면 ‘개구리’와 ‘소똥구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덕수 1360) <화조충류도첩>에서는 개구리와 잠자리가 보호색을 띠고 숨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개구리가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이 표현되어 있어 먹이를 노리는 포식자의 긴장감을 주기도 합니다. 또, 거미줄에 걸린 매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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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 상고재, <화조충류도>, 41.2x31.5cm, 국립중앙박물관, 덕수 1360 (사진출처 : 이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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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운의 <빈풍칠월도첩>은 시경의 빈풍칠월편을 그린 그림으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는 시대에 농민들이 농사를 지내며 읊고 있는 월령가를 그린 것입니다. 괴석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농민들이 오른편에는 문인이 앉아 있으며 다양한 벌레들이 배치되었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그림 한 폭에 놓여 각자의 삶이 녹아져 있습니다. 벌레가 집안으로 들어와 고생하고 있는 시와 함께 장면들이 묘사되어 그림의 흥미를 더합니다.
5월에는 메뚜기가 배를 움직이고 6월에는 여치가 날개짓을 하며,
7월에는 들판에 있고 8월에는 처마에 8월에는 창문에 나타나고,
10월에는 귀뚜라미가 나의 침상 밑으로 들어오고 궁색한 생쥐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해 창호를 흙으로 바르니
아! 우리 부녀자들은 말하기를
"새해가 되니 우리 거처로 모든 것이 들어오네"라고 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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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운, <빈풍칠월도첩>, 34.8x25.6cm, 국립중앙박물관, 동원 2174 (사진출처 : 이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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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조금 속도를 늦추어 작은 것을 돌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해당 글은 국립춘천박물관, 미물지생 - 옛 풀벌레 그림 속 세상, 2022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2022.10.25. ~ 2023.1.24까지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진행되었던 특별전시로 잘 짜여진 구성과 함께 작품을 통해 제작된 영상들로 관람객들의 흥미를 더했던 전시였던 것 같습니다. 전시를 못 보셨던 분들은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제공하는 아래 영상들을 참고해주시면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물지생微物之生, 옛 풀벌레 그림 속 세상] 개관20주년 기념 특별전 Teaser